2008년 12월 20일 토요일

벼랑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Ponyo on a Cliff (2007)

 

간만에 말랑거리는 줄거리에 마음마져 가벼운 느낌 :)

인어공주를 모티브로 했는데 더 감성적이고 풍요로운 느낌이다.

해피엔딩이어서 그럴지도-

 

 

 

 

 

2008년 12월 17일 수요일

반딧불의 묘 (1988, Grave of the Fireflies)


일본의 침략전쟁을 미화시키고 있다는 것.
여자들은 대부분 운다는 것.

미리 들었던 우려는,
화면 하나하나에 날라가 버렸다.

징징 거리며 가슴을 울리던 안타까움.
첫장면부터 울렁거리게 하던 가여움.

내내 펑펑 울고,
내내 기억에 남는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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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타 이사오 영화제.





추억은 방울방울 (1991) Only Yesterday, おもひてぽろぽろ


어느날 문득 나는 어린 날의 낯선 나를 만난다.
어린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선물이 무엇인지,
내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잊고 지낸 추억을 되짚게 해주는 것 만으로도 나는 살아있는 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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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너무 닮은 일본인들을 계속 미워하기만 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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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타 이사오 영화제.


이웃집 야마다군 (1999) ホーホケキョ となりの山田くん



다카하타 이사오답지 않은 깔끔함?

오랫만에 유쾌하게,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너무 비슷한 한국의 정서와 일본
그래서 더 미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모두 모두 잘될거야 --
케세라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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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타 이사오  영화제.

란포지옥, Ranpo Jigoku (2005)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지옥의 모습을 더 현실감있게?
 
여하튼 이런 엽기적은 영화를 만든 것도 대단하고,
어럽게 표를 구한 영화가 이런 영화라는 것도 대단하다!
 
야호-

클림트, Klimt (2006)



말코비치때문에 봤고, 그것으로 end
 
영화는 내내 연극같았고,
연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내내 거북했다.
 
클라이막스가 없는 연극?
클림트의 정신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나중엔 누가 현실의 인물인지 알 수 없었다.
 
아, 말코비치의 연기는 여전히 최고.




스크랩 헤븐 (スクラップ ヘブン , 2005)


세 사람에게 공통점은
복수를 하고 싶다거나, 
누군가를 도와주고 싶다거나,
아무 것도 아닌 세상에 침을 뱉고 싶다거나,
영화 내내 반복되면, '상상력' 타령은 
조금은 뻔하디 뻔한 결말로 '영화란 이런 것'임을 보여주었던, 
약간을 실망스러웠던 영화.
오다기리 죠의 귀여움만 영화를 가득 메우고 있다.
아, 좋아라~
 



해변의 여인 (2006)


홍상수 영화가 왜 갑자기 식상해졌을까-
 
고현정, 김승우란 단어 덕에 영화를 보기가 약간 망설임이 있었던 건 사실.
요즘 내내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투덜대다가, 극장전의 맑은 홍상수를 기억하며 살짝 기대한 것도 사실.
 
영화는 내내 "나쁜 이미지"와 싸우고 있다.
외국남자와 잔 여자에게서 "나쁜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다고 외치는 한국 남자와
자기가 아닌 다른 여자를 잤을 거라는 "나쁜 이미지"에 한국 여자는 내내 질퍽하다.
 
사람은 
자기가 하는 모든 행동을 정당화 시키며,
자기가 처한 모든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자기 키가 너무 크다고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자기 얼굴이 너무 크다고 얼굴을 잘라야 한다는
욕하는 고현정은 우아한척 하는 고현정보다 더 좋더라.

타짜 (2006)


범죄의 재구성처럼 빈틈은 없다. 
단지 1%의 천재성이 부족한 듯. 
영화는 꽉 차있는데, 우리는 내내 목말라 한다. 
그때처럼. 

조승우의 연기는 농익어가고, 
말이 필요없는 백윤식과 유해진, 
한명도 뺄 수 없는 조연들, 
그 속에서도 여전히 어설픈 김혜수.


귀향, Volver (2006)


근친상간을 막는 건 오직 모정?
아버지는 딸을 근친상간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딸은 같은 운명을 반복한다.
어머니는 딸을 지키기위해서 노력하고, 모정은 모든 것을 합리화한다.
 
많이 늙어버린 페넬로페 크루즈에 대한 안타까움,
그래도 연기와 미모는 여전히 빛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다.

2008년 12월 15일 월요일

이스턴 프라미스, Eastern Promises (2007)

 

지난번 봤던, 폭력의 역사때부터 데이빗 크로넨버그과 비고 모르텐슨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러시아식 영어로 묵직하게 역활을 소화해내는 비고 모르텐슨은 이제 눈여겨볼 배우가 되어버린 것 같다. 영화는 꽤 무겁고 잔인하다. 남자들을 위한 영화.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바디 오브 라이즈, Body of Lies (2008)

 

이념의 차이는 없는 적도 만들어 낸다. 민감함 부분을 더 민감하게, 이념의 대립을 사랑으로 승화 시키려는 노력은 조금 유치하긴 했다. 뚱뚱해졌던 우리의 레오가 날씬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반갑지만, 좀 더 좋은 영화로 만나고 싶다.

 

 

 

007 퀀텀오브솔러스, Quantum of Solace (2008)

 

007 영화가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지나치게 장식적이다. 스케일은 화려하나, 그 스케일 덕분에 현실성은 결여된 느낌. 냉전 시대의 시대의 유물은 자본과 자원을 공격하는 사생아를 낳았고, 영화는 맥을 못추며 흐믈거린다. 그리고 멋진 제임스본드는 언제나 환영-

 

 

 

 

 

 

 

눈먼자들의 도시, Blindness (2008)

 

영화는 끔찍했다. 책에서 그리고 있는 많은 영상들을 눈에 보이는 화면으로 옮겨 놓으니 엉성하기 그지 없는 B급 삼류 소설이 되어버렸다. 물론 중간 중간 감정을 조여오는 긴장감은 있지만, 어설프게 드리워진 나레이션덕분에 한편의 개몽 영화를 본 느낌이었다.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 (2005)

 

폭력의 역사는 단순하고 무식했다. 단순한 플롯의 영화를 쇼파에 앉아 집중해서 볼 수 있다니.

숨기고 있던 과거사를 들킨 우리의 아라곤은 서슴지 않고 현재를 지키려 애를 쓴다. 폭력에서 나왔고 다시 폭력으로 돌아가야하는, 사람의 인생처럼 영화는 내내 잔인하다.